“눈물로 산 40년, 말로 다 하겠소. 나 죽기 전에 진상규명이라도”

출처 : 한국일보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 - 오마이뉴스 모바일

링크 : https://news.v.daum.net/v/20200516043234307

요약 : 5·18 최초 사망자 김경철 씨 모친 임근단 씨 “돌도 안 된 핏덩이 손녀를 등에 업고 아들 제사 지내러 망월동 묘지를 다닌 어머니의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하겠어. 정말 고생 많이 했지….” 임근단 씨는 구순을 앞둔 고령이시지만 눈물로 보낸 지난 40년을 생생히 기억했다. 36세에 홀로 돼 5남매를 악착같이 키워낸 여장부지만 큰아들 경철이만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비록 청각장애는 있었지만 잘 생기고 똑똑했던 경철이가 80년 5월 공수부대원의 곤봉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행복했던 삶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경철 씨는 19일 오후 3시쯤 친구 3명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올 때 공수부대원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심한 구타를 당한 채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사망했다. 임근단 씨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아들이 남기고 간 손녀 혜정이다. 혜정이는 태어나 백일이 지나자마자 아버지를 잃고 그다음 해에는 어머니마저 곁을 떠났다. 그때부터 혜정이는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삶이 너무 힘들어 혜정이를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임근단 씨는 온몸을 던져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고 광주항쟁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지금까지 전국을 백방으로 뛰며 살아왔다. 아들의 피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산다. 아들 핏값으로 받은 보상금 의 일부를 성당의 성모상을 짓는 데 보태고 매일 기도 생활을 하고 있다. 5년 전에는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치유과정을 거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나의 의견 :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임 씨에 대한 피해보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5.18 사건 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접적인 사과를 5.18 희생자분들한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희생자분들이나 희생자 가족, 이웃 등 많은 슬퍼하는 사람들의 화가 좀 풀릴 것 같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